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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알라 작성일20-07-23 11:04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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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대전, 김성락 기자] 경기 종료 후 한화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ksl0919@osen.co.kr


[OSEN=대전, 이상학 기자] “결과가 안 나오니 과정이 다 묻힌다.”

최하위 한화의 부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수원 KT전부터 22일 대전 KIA전까지 6연패. 이 기간 타선이 총 7득점, 극심한 빈타에 허덕이고 있다. 수비 실책도 7개나 쏟아졌다. 집중력이 결여된 허술한 수비, 무기력한 경기력에 연패가 다시 길어지자 최원호 감독대행도 선수단에 메시지를 전했다. 동행복권파워볼

지난 21일 KIA전 패배 후 정경배 수석코치를 통해 최원호 감독대행은 “경기를 이길 수 있고, 질 수도 있는데 조금 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은 조금 더 화이팅을 내야 한다. 투지 있는 모습들이 필요하다. 최근에 그런 모습이 약한 것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물론 가장 답답한 사람들은 선수들이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21일 경기 종료 직후에는 KIA 수훈선수 김규성이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 최고참 김태균과 강경학이 그라운드에 나와 곧장 야간 특타에 돌입했다.

올해 한화에선 그리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주장 이용규부터 젊은 선수들까지 대전 홈경기 때 결과가 안 좋으면 그라운드나 실내연습장으로 가서 특타를 하곤 했다. 부진 탈출을 위해 퇴근까지 미루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로 나오지 않는다.


[OSEN=대전, 김성락 기자] 한화 최원호 감독대행이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ksl0919@osen.co.kr


최원호 대행은 “결과가 안 나와서 그렇지 우리 선수들도 노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더하면 잠을 안 자야 될 정도다. 그런데 결과가 안 나오니 과정이 다 묻힌다’며 “LG에 있을 때도 선수들이 참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계속해서 안 좋다 보니 (외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더라”고 떠올렸다. 최원호 대행은 LG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했지만 팀은 2003~2012년 10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하며 암흑기를 보냈다.

최원호 대행은 “이럴 때일수록 심플해져야 하는데 다들 생각이 많아진다.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게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수비할 때도 마지막까지 실수 없이 더 안전하게 하려다 보니 뒤로 물러서며 소극적으로 하고, 송구도 한 번에 가지 않거나 (손에서 빠져) 날린다”며 “저도 그런데 선수들은 오죽하겠어요”라는 말로 연패에 빠진 최하위 팀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2일 KIA전에도 6회초 무사 1루에서 2루수 정은원이 김민식의 땅볼 타구에 첫 발을 앞으로 내딛다 백스텝을 하면서 실책이 나왔다. 그라운드에 비가 내린 영향인지 스텝이 꼬이며 넘어진 것이다. 중심을 잃은 채 어렵게 2루 송구를 했지만 옆으로 데굴데굴 빗나갔다. 병살이 되어야 할 상황이 무사 1,2루 위기로 바뀌었다. 실점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매끄럽지 못한 수비가 낳은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화는 이날 마무리투수 정우람을 1점차로 뒤진 7회에 조기 투입, 2이닝을 썼지만 타선 침묵 속에 1-2로 패했다. 연패가 ‘6’으로 늘어난 한화는 리그에서 가장 먼저 50패(17승)째를 찍었다. 시즌 승률 2할5푼4리. 지난 2002년 롯데(35승97패1무 .265)를 넘어 21세기 최저 팀 승률 기록이다. 9위 SK(22승44패)와 격차도 5.5경기로 벌어진 한화, 탈꼴찌도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waw@osen.co.kr


[OSEN=대전, 김성락 기자] 6회초 무사 1, 2루 한화 정은원이 그라운드에 미끄러진 뒤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ksl0919@osen.co.kr

[양상훈 칼럼]
페미니스트 자처 文, 미투 불 지핀 여자들 여성 지지 받고선 박원순 성추행에 침묵
여성을 개인적 이익과 득표 무기로 이용한 것



양상훈 주필

2030 여성들의 정치의식이 반(反)보수로 흐르기 시작한 것은 광우병 사태 때부터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에서 2030여성들로부터 상대보다 훨씬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광우병 사태 이후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젊은 여성이 건강 문제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례는 많이 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다른 지역 방사능 수치에 이상이 없음에도 많은 사람이 한동안 일본 방문을 꺼렸지만 그런 경향은 젊은 여성들에서 더 두드러졌다. 이제는 광우병 사태가 과장된 괴담이 만든 소동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당시엔 심각한 이슈였다. 생리대, 화장품까지 위험하다는 괴담이 퍼지며 여중생, 여고생들이 시위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나중엔 젊은 주부들로까지 확산됐다. 사태 후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2030 여성의 지지도는 6%로 급전직하했다.

이 현상은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굳어지는 흐름이 나타났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 지지는 문재인 후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박 26%, 문 63%였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 현상에 대해 젊은 여성들이 박 후보를 같은 여성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여성의 모습을 한 꼰대'나 '금수저 공주'로 보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과거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기록은 잘 찾을 수 없다. 당에 들어와 여성 행사에 참석할 때 의례적인 연설을 한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패하긴 했어도 2012년 대선 때 젊은 여성들의 압도적 지지는 문 대통령이 이를 큰 자산으로 여기게 된 계기가 된 듯하다. 이때부터 문 대통령의 자세는 바뀐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2016년 벌어진 서울 강남역 '묻지 마 살인'이다. 한 정신질환 남자가 젊은 여성을 이유 없이 살해한 사건에 여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남성들의 여성 혐오와 여성의 열악한 처지가 드러난 사건으로 보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현상의 정치적 가능성을 파악한 사람들은 문 대통령 진영밖에 없었다. 당시 문 전 대표는 혼자서 강남역을 찾아 추모하는 젊은 여성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다음 생(生)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글을 인용해 올렸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문재인 팬덤이 형성됐다. 이들은 나중에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을 만들고 지하철에 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올리기도 했다. 이 지지는 거의 콘크리트와 같아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충성 집단이었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를 페미니즘(여권 운동)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고 성(性) 관련 이슈가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개입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버닝썬이라는 클럽에서 벌어진 일을 "검경이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가짜 페미니스트 박원순의 파탄은 문 대통령의 이런 '페미니즘'도 깊은 성찰과 결단 끝에 나온 진정한 철학인지, 아니면 젊은 여성들의 환심을 사서 표를 얻으려는 가식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진보 진영 인사들이 잇달아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된 사태에 대해 "이는 여성 인권 문제"라면서 "성폭력 발본색원"을 지시했다. 그때까지 가해자들은 문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 검찰 간부, 예술인 등이었다. 문 대통령은 여기까지는 여성 편에 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자기편, 예컨대 탁현민 같은 사람에 대해선 여성 편이 아니었다. 저열한 여성 비하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심지어 청와대로 다시 불러 왕행정관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다 터진 박 시장 사건으로 문 대통령의 '본색'이 드러났다. 가해자인 박 시장에 대해선 애도를 표하면서 피해 여성에 대해선 단 한마디 위로조차 건네지 않았다. 상처받은 많은 여성을 향해서도 "발본색원"을 약속하기는커녕 침묵했다. 온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입장을 밝히라는 수많은 요구에도 침묵했다. 민주당이 '(박원순)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어이없는 플래카드를 걸어도 침묵했다. 문 대통령의 침묵은 사실상 성추행 가해자 지지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열성 지지층 동향을 의식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을 일으킨 여성들이 박 시장에 대해 침묵하는 것과 같다. 부산시장만이 아니라 서울시장 보선까지 치르게 된 상태에서 자기 진영의 도덕성 붕괴를 자인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멋지지만 진실하지 않은 가식의 향연이었다. 국민통합, 집무실 이전, 권력기관 독립, 탕평인사, 수시 소통, 직접 언론 브리핑, 평등·공정·정의 등 거의 반대로 됐다. 이제 '페미니스트 대통령' 하나가 더 추가됐다.

성명 한 장 내고 입을 닫은 일부 여성 단체들과 그들이 배출한 여성 국회의원들에 대해 누군가 "여성을 팔아먹고 사는 여자들"이라고 평했다. 여성을 정치에 이용한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이익과 득표의 무기로 쓴 사람들이다.


김호용(1917∼2000)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 그동안도 안녕하셨지요? 요즈음 그곳의 날씨는 어떤지요? 제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글방을 고희를 맞이하면서 그저께서야 갖게 됐습니다. 이 글방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첫 번째 편지입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간밤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다녀가셨더군요. 오늘 새벽 아버지를 향한 저의 그리움을 시(詩) 한 수로 남겼습니다.동행복권파워볼

밤새 뒤척이다 아버지를 만났다/늘 골목길이나 샛길에서 만났었던 아버지가/오늘은 큰길에서 나오셨다/큰 곤아! 크게 소리치며 나오셨다/작은 곤이도 곁에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항상 내 뒤 꼭지에 붙어 다니신다던 아버지는/ 내가 우울의 터널에 갇히고/자살의 늪에 빠져 있을 때는/그림자도 보여주시지 않더니/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부르니/이번에는 대로변에서 나를 부르셨다/아마도 그때는 나를 데려갈 엄두가 안 났었나 보다/아니 작은 곤이가 옆에 찰싹 붙어 있어/내가 없어도 외롭지 않으셨나 보다/아직은 할 일 좀 더 하고 오라며/동녘이 밝아 온다며 발길을 돌리셨다/작은 곤이는 아버지 왼손을 꼭 잡은 채/빙긋이 미소만 지어 보였다.

“큰 곤아! 네가 언제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아버지가 너의 머리 뒤 꼭지에 붙어 다닌다는 것만 명심해라.” 하지 지체장애인인 아들이 의과대에 합격해 난생처음 집을 떠나던 날, 아버지께서 저에게 해준 말씀 기억하시지요? 그때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과 아버지의 지대한 염려 덕분에 저는 험난한 의과대 과정을 거쳐 아버지가 원하시던 의사가 됐습니다.

아버지, 고희를 넘긴 지금도 저는 진료실을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아들이 하지가 완전히 마비돼 뜨거운 국이 쏟아져도 뜨거운 줄 모르고, 바늘로 찔러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 자살 시도를 했을 때 아버지의 그 심정을 고희를 넘긴 지금까지도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제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만일 이승을 떠나게 된다면 시신을 부산대 의과대학 실습용으로 기증한다는 서약서를 쓰며 아들을 입원시키는 아버지의 가슴이 미어지고 터질 듯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금도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호강하고 있는 저는 아버지께 지은 죄가 너무나 큰 것 같습니다.

작년 봄 저의 칠순을 맞이해 출간한 제 시집 자화상을 이제는 다 읽으셨겠지요? 다음 달에는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심심해하실까 봐 자그마한 수필집을 냅니다. 비록 졸작이지만 불효자가 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이니 고맙게 받아주세요. 작년 6월 아버지께서 청년 시절 한동안 머물렀던 북간도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 다녀왔습니다. 문학시선이 주최하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아 그 자격으로 연변한국국제학교에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특강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막내 손자인 종윤이가 시월에 결혼합니다. 아버지, 그날은 오실 거지요? 평소에 치과 치료 이외에는 전혀 병원에 다니신 적이 없는 아버지께서 2000년 늦가을에 낙엽 지듯 83세로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언 한마디 없이 홀연히 떠나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자로서 황망한 마음을 어디 둘 데가 없었습니다.




성당에서의 아버지 장례미사는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광경으로 남았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아버지가 떠나가듯 지고, 가을 햇볕은 왜 그렇게 눈부시게 찬란했던가요? 언제가 될지는 저도 알 수 없지만 제가 아버지 곁으로 가는 그날까지 안녕히 계세요.


[OSEN=강서정 기자] ‘딸바보’ 아빠 백종원이 막내딸에게 아빠 잘생겼냐는 질문을 했다가 상처를 받았다.

소유진은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세은이의 아빠 그리기. 세은이 백주부. 둘이 똑닮았는데”라는 글과 동영상을 게재했다.

동영상에서 백종원, 소유진 부부의 막내 딸 세은 양이 고사리 손으로 아빠 얼굴을 그리고 있는 모습.

백종원은 딸에게 아빠의 눈, 코, 입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다 “아빠 잘생겼어?”라고 물었다. 그런데 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해 이를 찍던 소유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딸의 단호한 대답에 백종원은 “그럼 못생겼어?”라고 묻기도. 부녀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한편 소유진은 백종원과 2013년 결혼해 아들과 두 딸을 두고 있다.기사 이미지

(편집자 주) 축구팬들에게는 각자 기억하는 축구대표팀의 명경기가 있습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나선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디에고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박창선이 넣은 골부터 모두가 잊지 못하는 2002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헤더 골든골, 2010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해버지'로 불리는 박지성이 수비수의 볼을 가로채 골을 넣고 보여준 풍차 돌리기 세리머니까지 다양합니다. 스포티비뉴스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 3월부터 멈춘 축구대표팀의 과거 경기들을 회상하며, 직접 뛰었던 이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시리즈로 마련해 연재 중입니다. A대표팀부터 연령별 대표팀이 치른 기억 속의 명경기, 내가 좋아했던 전설의 회상까지 '나의 A-스토리'에서 한 번에 느껴보시죠.

[스포티비뉴스=대전, 유현태 기자, 이성필 기자] "남산 타워호텔(현 반얀트리 호텔)에서 팔각정까지 쉬지 않고 20분이면 올라갔던 것 같아요."

한국 축구 전설 둥 한 명인 '황새' 황선홍(52)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쁜 기억은 단연 2002 한일월드컵이다. 폴란드와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안겼고 미국전에서는 붕대 투혼을 보여줬다. 16강 이탈리아전 연장 전반에는 수비벽 밑으로 깔아 프리킥을 시도하는 축구 지능을 뽐냈고 후배들과 4강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2002년의 기쁨 안에는 과거의 슬픈 기억들이 자리한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그의 축구 인생이 녹은 것이다. 특히 1994 미국월드컵이 황선홍에게는 2002년의 한을 제대로 푸는 시발점이었다.

대표팀 주축이라 욕심이 많았던 1994 미국월드컵

지난달 25일 대전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던 황 감독은 대뜸 미국월드컵을 이전과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새롭게 회상했다.

미국월드컵은 처음 출전해 어리바리했던 1990 이탈리아월드컵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지울 무대였다. 홍명보(51)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더불어 막내였던 이탈리아 대회를 뒤로하고 미국에서 일을 내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축구사(史)에서 미국월드컵은 소위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며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일본이 이라크에 비겨주는 바람에 '타의의 도움'으로 진출했던 대회라 더 열심히 뛰어야 했다.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과 한 조에 섞여 쉽진 않았지만, 더위에 강한 체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정말 준비를 열심히 했어요. 언론에도 한 번씩 속내를 이야기했었어요. (남산) 타워호텔에서 합숙 훈련을 하던 시대였는데, 남산 팔각정까지 뛰어다녔죠. 미국이 덥다고 해서 체력적으로 준비를 아주 많이 했었어요. 팀에서 주축으로 자리를 잡아서 욕심이 많았고요. 너무 잘하려고 했던 것이 많은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골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몸을 경직시키지 않았나싶구요.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급해서 많이 서둘렀던 대회였어요. 실수가 잦았죠."

타워호텔은 변변한 전용 훈련장이 없던 대표팀의 숙소였다. 프로보다 대표팀이 우선하던 시기였기에 소집은 익숙한 일이었다. 동시대에 함께 대표팀에서 뛰었던 홍 전무나 서정원(50) 전 수원 삼성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호텔 구조를 다 파악할 정도"라거나 "식사가 지겨워서 다른 호텔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라고 할 정도로 지겨운 곳이었다. 지금이야 최고급 스파를 갖춘 호텔로 변신했지만 말이다.

"정확히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남산 정상인 팔각정까지) 한 20분이면 올라가지 않았나 싶어요. 오전, 오후에 훈련을 하더라도 새벽에 혼자 뛰었어요. 그때는 완전히 날아다니던 시기라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 올라갔고요. 왕복해도 1시간은 안 걸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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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적으로 준비한 대회였고 스페인과 1차전을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2-2로 비기면서 볼리비아와 2차전에 대한 준비는 더 철저했다. 상대적으로 우위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충분히 해낼 것으로 믿었다. 김호(76)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도 "볼리비아만 잡으면 16강에 간다는 믿음이 있었다"라며 전체적인 호흡이 나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믿음의 최일선에는 황선홍이 있었다.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화려하게 등장해 기대주로 불려 더 그랬다.

"(이탈리아월드컵 출전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다. 만으로 22살, 정말 어린 나이였다. 홍 전무와 제가 가장 어렸죠. 대학, 아마추어 선수는 2명뿐이었으니까요. 벨기에와 첫 경기에서 90분을 뛰었고 우루과이전을 45분 정도 뛰었고요."

큰 무대를 경험했으니 미국에서 달라지리라는 기대감이 큰 것은 당연했다. 최전방 공격수로 마무리라는 책임감을 안고 나섰고 스페인전에서 놓친 기회들을 볼리비아전에서 만회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예선에서 많은 골을 넣었고 평가전에서도 좋은 흐름을 이어왔었기 때문이다.

"(미국월드컵 당시에는) 완전히 주축 선수였죠. 팬들의 기대가 컸다. 거의 뭐 신문 1면에는 제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스트라이커로서 승리를 확정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고요. 골에 대한 기대도 많이 하셔서 저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았죠.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데 그게 부담으로 많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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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제2의 이완용'이라는 수식어 붙은 황선홍의 마음은 쓰라림 그 자체

결국, 그 기대는 허공으로 슈팅을 난사하는 결과물로 나왔다. 소위 '*볼', '*발'이라는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세 번 정도는 골대 밖으로 슈팅했던 것 같아요. 예측하지 않았던 장면들이었는데 하늘로 띄울 정도는 아닌 것들이었죠. 많이 굳었던 것 같아요. 여유를 갖고 해야 했는데, 현역 시절 첫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그 흐름으로 갔어요. 프로 리그도 마찬가지였구요. 스페인전에서 정말 결정적인 기회를 하나 놓쳤는데 (수비 뒤로) 빠져들어 가서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만들었어요. (이)영진이 형이 스루패스를 넣어줬는데 그게 막혔죠. 제치고 나왔어야 했는데 여유가 없었어요.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래서 볼리비아전에서 무조건 골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요. 실수를 많이 했어요."

볼리비아전은 황 감독 축구 인생에 잊고 싶은 기억이다. 한 골만 넣었어도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그랬다.

"(대회 끝나고 귀국해서 보니) 매국노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2의 이완용'이라는 말도 있었고요. 별 이야기를 다 들었던 것 같아요. '홈런볼'이라는 수식어는 약한 수준이었어요. 만회되지 않더라고요. 10월에 열렸던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고 일본전에서도 두 골을 넣으면서 3-2로 역전승을 거뒀어도 만회가 되지 않았더라구요. 한 경기에서 8골을 넣고 일본전 역전승을 이끌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준결승에서 0-1로 졌어요. 저 때문에 진 것 같아요.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저 때문에 패한 거에요. 제가 득점하지 못해서 졌다는 말이에요."

독일과 3차전은 10분만 더 있었다면 한국이 이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후반에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황선홍은 0-3에서 추격에 시동을 거는 만회골을 넣었다. 골을 넣고 그는 환호 대신 '에이 씨!', '아우!' 같은 감정을 담은 것처럼 혼자 짜증이 나는 세리머니를 보여줬다.

"저 자신에게 화가 났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는데, 세계 최강인 독일을 상대로 득점했는데 그렇게 기쁘지 않은 것도 신기했어요. 그 장면을 꿈꾸며 축구를 해왔는데, 골을 넣었는데 화가 나더라고요. 멋지게 득점을 했는데도 말이죠. 참 기분이 그랬어요."

한으로 남은 월드컵, 큰 무대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줘야 인정받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황 감독은 1998 프랑스월드컵을 기다렸다. 대회 직전 중국이 그에게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한 채.파워볼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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